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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신성한 결혼 거창하게 말해서 한국 영화의 희망을 엿봤다. 유재선의 잠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순에 이른다. 칭찬에 앞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유려하지는 않았다. 집 안이라는 장소를 흥미롭게 재구성하거나 갓난아이라는 현재적 존재, 즉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며 모든 것을 현재화하는 특수한 중력의 도전도 수락하지 못했다. 모든 일의 중심에 아기가 있음에도 아기의 현재성을 영화 미디어로 노출하지 않아서 이 영화의 다른 현실은 은폐된다. 이에 관한 해석은 마지막에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과감한 생략은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파편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때론 진득히 집중해 밀고 나가야 나중에 과감히 생략할 때 관객들도 함께 벼랑 위에서 도약할 수 있다. .. 더보기
오펜하이머는 기존 체제를 견딜 만한 것이라 웅변하는 나르시시즘적 프로파간다다 며칠 동안 썼다 지웠다 하다가 리뷰 쓰기를 포기한다. 할 얘기는 많은데 블로그에 올릴 만큼 가벼운 글로는 못 쓰겠다. 전면적이고 큰 비판이 필요하다. 단순히 작가론으로도 안 되고 동시대 작가 감독들의 경향을 아우르는 비판 속에 끼워 넣는 정도가 좋을 것이다. 왜 자기 초상이 그를 억압하는 체제와 한 패가 되어 3시간 내내 변호를 하는지 지적하는 것이 오펜하이머를 통해 달성해야 할 비판점일 것이다. 막말을 좀 하자면, 설사 원폭에 맞아 새카맣게 타버리는 일본인/조선인 소녀가 나왔더라도 오펜하이머의 고뇌하는 표정보다 견딜 만했을 것이다. 반성하고 고뇌하는 주체의 서사를 읊어댐으로써 기존 체제는 스스로를 사면한다. 더보기
공감 괴물 관심 한번 받아보겠다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 영화들을 보고 있다. 강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를 좀 봤다. 강풀이 각본을 쓴 만큼 그의 감상주의는 별다른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고스란히 적용된 것 같다. 인물들은 현실적인 깊이를 결여하고 있고 진부한 전형을 답습한다. 가령 이런 대사를 한번 보자. 초능력 그게 뭔데?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엄마가 초능력 있는 어린 아들한테 영웅이랍시고 나대지 말라며 하는 잔소리다. 유행에 쉽게 휩쓸리는 한국 사회에서 한 차례 유행하고 지나간 훈계다. 공감 능력은 양날의 검이고, 하늘을 슝슝 날아다니는 정도의 초능력이라면 공감 능력은 아무리 중요해도 두 번째 이하다. 1. 공감한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