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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인종차별

 

https://youtu.be/FTBcpVWHNGk?si=MCzH_m6zRiuZSjtf

 

 

 언론들이 약간 멍해 보인다.

 예전에 KBS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가 대체로 주인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실험을 한 적 있다.

 주인을 잘 따르는 큰 개라고 하더라도 주인이 해를 당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당황하다가 도망친다는 것이다.

 비단 개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도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훈련이 돼 있지 않으면 그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행동한다.

 군대에서 허구헌날 준비태세 훈련을 하는 것도, 상관의 명에 복종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다 난리통의 혼돈 속에서 평소 몸에 익은 대로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은 주류 사회에서 인종적 갈등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비판의 날이 선 엘리트들이 모인 언론에서도 이게 인종차별인지 감을 못 잡는 것 같다.

 이준석이 옳다 윤석열이 옳다가 아니라 그것과 관계없이 이건 적나라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다.

 이준석은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썼다고 했는데, 미스터 린튼이라고 부르거나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라는 제목을 영어로 말하는 게 무슨 뉘앙스를 살리나?

 무슨 뉘앙스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어 사용자들끼리 갑자기 영어로 대화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integrity라는 말이 번역하기 까다롭다고 해서 철수를 영어 이름 Charles로 부르며 전체 담화를 영어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integrity를 일관성이나 통일성 등으로 번역해서 말한 뒤 특별한 뉘앙스를 전달할 필요가 있으면 integrity라고 덧붙이는 게 보통이다.

 이자스민 전 의원을 결혼 이전 이름으로 부르며 따갈로그로 말하고 "당신은 아직 우리의 언어로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라고 비판하거나

 태영호 의원에게 북한 특정 지역 방언으로 말하며 ㄹ두음 법칙을 북한식으로 발음해도 차별이 아닐까?

 아주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곧 있을 결별과 자신의 도전에 앞서) 어떤 괴로움이나 두려움이나 피로, 노이로제 또는 그에 대한 심리적 반발로 으스댄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준석은 마치 훈련받지 않은 개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인종 편견에 근거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다 뒤늦게 뭔가 잘못된 걸 눈치챘는지 민주주의의 언어 운운했다.

 (무엇이 민주주의의 언어고 무엇이 비민주주의 언어인가?)

 나중에 인터뷰에서는 또 민주주의 운운은 쏙 빼먹고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했다.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뉘앙스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하나가 심각한 인종차별이다.

 가령, Now you're one of us (당신은 이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됐습니다) 이건 대체 무슨 얘긴가.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당 밖에 있던 외부인이었다가 이제 우리 당 사람이 됐습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인 씨 가문의 헌신이나 민주주의 운운, 그리고 이준석 자신의 예고된 탈당이라는 앞뒤 맥락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인 씨 가문의 헌신 대상은 국힘 계열의 보수 정당이 아니라 한국 사회, 심지어 북한까지 포함한 한반도인들이다.

 인요한이 민주주의 바깥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다.

 Now you're one of us의 Now와 one과 us에 담긴 뉘앙스는 인종차별을 오만하게 증폭한다.

 심지어 이준석은 인요한보다 한국에 오래 살지도 않았다.

 자기가 뭔데 "이제"와 "우리"의 기준을 설정하고 문지기처럼 인요한을 승인하나?

 여기서 재밌는 점은 언론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이준석이 저런 수준의 인종차별을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택광이 라깡 정신분석에 입각해 박근혜를 여성이 아니라고 비판할 때, 미국의 오바마 사례(Is Obama black enough?)를 들며 누가 여성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받아친 적 있는 사람이다.

 세련된 미국 정치의 수사학을 익힌 정치인으로 인식되던 정치인이 중대한 갈림길 앞에서 (GS25 광고에 대한 광기에 이어) 다시 펨코와 디씨의 속살을 꺼내 보였다.

 완고한 자기 중심성, 비릿한 차별 의식, 적대감

 언론은 낯선 일에 곧장 반응하지 않고 덩달아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경향 한겨레 미디어 오늘 등 평소에 이런 문제에 민감하던 언론은 별 신경을 안 쓰고 있고 위 MBC 뉴스도 "그렇다고 합니다" 수준의 싸움 중계에 그치고 있다. (인요한에게 한 말 전부 봤더니 뭐 어쨌다는 것인가?)

 반응하는 주체는 이준석 어디 트집 잡을 데 없나 벼르고 있던 여당 정도다.

 (새로운선택에서 곽대중이라는 사람이 비판했다는 예외는 있지만 정의당이나 녹색당조차도 여기에는 무반응이다)

 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번 배워 새길 만한 교훈은, 한 사람의 기묘한 취향이나 욱하는 성격, 꿍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오해, 자기도 모르는 새 저지르는 방종을 우리 사회 전체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훈련받지 않은 개처럼 표표히.

 심지어 전쟁도 한 사람의 판단 착오나 뒤틀린 세계관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비근한 예가 바이든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윤석열의 실언이다.

 서울대 무슨 명예 교수인가 하는 사람까지 나서서 그 말에 문제가 없다고 거들었고, 정부가 비판하는 언론을 탄압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준비돼 있지 않으면 흘러가는 대로 합리화하고 믿고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이성적임"을 자처하는 이준석 팬들의 모순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저 페미니스트 야만인이나 86 꼰대를 타자로 둔 자기위안적 연대를 조직했을 뿐 실제로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다.

 그들의 팬질은 기본적으로 문재인 팬질, 윤석열 팬질, 이재명 팬질과 다르지 않고 이 발언도 그들에겐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비판적 지지는 순진하고 한가한 말이 됐다.

 팬-소비자 정체성이 이성을 참칭하고 정치와 언론 모두를 엉뚱한 데로 인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