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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신성한 결혼 거창하게 말해서 한국 영화의 희망을 엿봤다. 유재선의 잠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순에 이른다. 칭찬에 앞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영화가 전체적으로 유려하지는 않았다. 집 안이라는 장소를 흥미롭게 재구성하거나 갓난아이라는 현재적 존재, 즉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며 모든 것을 현재화하는 특수한 중력의 도전도 수락하지 못했다. 모든 일의 중심에 아기가 있음에도 아기의 현재성을 영화 미디어로 노출하지 않아서 이 영화의 다른 현실은 은폐된다. 이에 관한 해석은 마지막에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과감한 생략은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영화를 파편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때론 진득히 집중해 밀고 나가야 나중에 과감히 생략할 때 관객들도 함께 벼랑 위에서 도약할 수 있다. .. 더보기
대답 못 하면 죽는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대꾸해야 한다.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침묵은 상징적인 미덕이지만 현실에서 그 미덕을 경험한 사람은 많지 않아 낯선 행위다.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대답 못 하면 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입에 거품을 물고 끝까지 싸워야 하며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그냥 에바참치 어쩔티비 지껄여서 상대를 침묵시키면 이긴다. 소위 프로 막말러라는 소리를 듣는 지젝과 진중권을 비교하면 질적으로 상대가 안 된다. 지젝은 통속적인 예를 들거나 비속어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절대 상대의 인신을 공격하는 일은 없으며 비열한 태도를 보이지도 않는다. 단순히 예의가 바르다는 차원이 아니라 즉 태도 보수적 안정감을 주는 차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토론을 근본적으로 다른 일로 취급한다. 상대의 약점을 공.. 더보기
오펜하이머는 기존 체제를 견딜 만한 것이라 웅변하는 나르시시즘적 프로파간다다 며칠 동안 썼다 지웠다 하다가 리뷰 쓰기를 포기한다. 할 얘기는 많은데 블로그에 올릴 만큼 가벼운 글로는 못 쓰겠다. 전면적이고 큰 비판이 필요하다. 단순히 작가론으로도 안 되고 동시대 작가 감독들의 경향을 아우르는 비판 속에 끼워 넣는 정도가 좋을 것이다. 왜 자기 초상이 그를 억압하는 체제와 한 패가 되어 3시간 내내 변호를 하는지 지적하는 것이 오펜하이머를 통해 달성해야 할 비판점일 것이다. 막말을 좀 하자면, 설사 원폭에 맞아 새카맣게 타버리는 일본인/조선인 소녀가 나왔더라도 오펜하이머의 고뇌하는 표정보다 견딜 만했을 것이다. 반성하고 고뇌하는 주체의 서사를 읊어댐으로써 기존 체제는 스스로를 사면한다. 더보기